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에서 살아남기 (문단 편집) === 유비군 === 공손찬 휘하에 있다가 서준의 요청으로 조조를 막기 위해 서주에 정착한다. 분투 끝에 도겸에게 서주목의 인장을 받아내고, 장패를 굴복시키고, 서준이 예주로, 손책이 서주 남부에서 강동을 향해 움직이면서 서주의 주인이 된다. 이후 북벌을 하여 공손찬의 세력을 흡수하며 원소와 마찰을 빚는다. 청주를 장악 직전까지 갔지만 그 전에 원소가 10만이란 대군의 힘으로 압박해 들어오자 물러서게 된다. 그 후 손책군이 강동에서 패배하자 연합하여 서준과 싸우지만 패배하고 협상한다.[* 서준 입장에선 유비와 싸우면 후에 있을 원소와의 싸움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유비라는 방파제를 세워 원소에 대비한 것이다. 이전에 같은 이유로 여포에게 연주를 양보했다.] 손책 사후, 손가의 세력들을 흡수하여 청주를 지킴과 동시에 서준의 빈틈을 노려 손권을 앞세워 침공하지만 또다시 실패한다.[* 적절한 시점에서 회군하려 했지만 손권이 회군 명령을 연이어 거부하고 장마에 의해 퇴로가 막히면서 결국 무리하게 진군했다가 제갈량의 계책으로 실패한다.] 다행히 세력 균형 문제로 큰 손해는 보지 않았다. 원한을 산 양대 대세력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주의 여포를 격파하고, 장안까지 활로를 연 다음 서량-장안-연주-서주로 이어지는 선을 완성하려 들고 있다. 서준이 헌제를 손절했지만 남의 손에는 넘어가지 않게 막아내고 있었으나... 조조와 손잡고 협천자에 성공한다.[* 다만 이후 여러 문제점에 부딪치는데 우선 황폐화된 관중을 유비가 재건해야 될 처지에 놓였다. 협조해야 될 조정 대신들은 유비를 경계하고 있어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 주변 상황도 나쁜데 마등과 장로 등이 유비를 경계하여 군비 증강 중이며, 동맹인 조조군은 원소군과 전쟁 중이라 계속해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헌제의 건강이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있다.] 장로와 협상하여 항복을 받아낸다. 이후 법정의 도움으로 익주도 얻고 마등의 협력도 얻어낸다. 서준의 주력군이 하북에 간 사이 영천과 남양을 뺴앗고 이어 완, 양양 등 주변 일대를 점령하지만 육손의 청야 전술로 빈 성만 얻으며 보급이 어려워진다. 이어 강릉을 공격하지만 육손에게 패하고 만다[* 이 싸움에서 유비의 주력군은 괴멸하고 의제인 장비가 죽을 정도로 치명적인 패배었다.] 이후 장소의 반란을 진압하고 헌제에게 양위를 받아 황제가 된다. 노국(=서준)과의 전쟁에서 전선인 낙양을 지키지만, 병주와 배후인 한중을 빼앗기는 것을 시작으로 근거지인 익주를 빼앗기고 남은 지역인 양주마저 빼앗기면서 계속 수세에 처한다. * '''[[유비]]''' 당시 청주에서 공손찬, 전해의 객장으로 지내며 원소와 싸우던 시기. 서준의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 딱히 출세할 길이 보이지 않던 청주를 떠나서 서주로 온다. 강력한 기병인 백마의종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필 욕심이 앞선 것인지 조조의 기습에 당해 위기에 처한다. 이에 서준의 아버지가 유비를 구하기 위해 출병했다가 거기까지 읽히는 바람에 전사해고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터지기도 했다. 그 후 서준, 손책의 가세로 간신히 조조군을 몰아낸 후에는 서주에서 손책, 도겸과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간신배지만 서주 호족인 조굉을 관우와 장비가 폭행하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물론 이건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 잠깐 밀리고 있었고 미가와 혼인한 서준, 도겸의 조카딸과 혼사를 제안받은 손책에 비해 서주 호족과 혈맹을 맺는 것에 실패해 불리해지고 도겸의 낚시질에 거점으로 삼은 소패성에 조운만 두고 자리를 비웠다가 장패군의 기습을 받으나, 조운을 스카우트하려던 서준이 들려서 조력을 준 덕에 당하지 않고 기어이 서주목의 자리를 차지한다. 다만 조운의 마음은 유비를 떠나서 서준에게 가게 된다. 그 후에는 서주 남쪽(소패, 담, 팽성, 광릉)을 손책에게 양보하는 대신 화친을 맺고 북진해 장패를 격파하고 청주로 진출해 흩어지는 중인 공손찬의[* 이때 공손찬은 계교전투의 패배와 유우를 살해한 일, 그리고 무자비한 착취로 인심을 완전히 상실하고 세력이 분해되는 시점이다.] 세력을 흡수할 계획을 세우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지만 원소가 10만 대군을 이용해 유비를 공격하자 청주 일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잃게 된다. 서준 일행의 추리를 보면 이 날카롭고 과감한 움직임은 기존의 유관장 형제의 방식이 아니니 장소를 필두로 서주의 명사들이 결국 유비의 책사로 영입된 모양. 손권과 주유가 서준에게 패퇴하자, 그들을 이용하고 자신들의 군세 3만까지 더해 수춘을 공격해 어부지리를 노린다. 그러난 이는 제갈량의 계책으로 실패했으나, 사전에 예측한대로 원소를 부담스러워 한 서준 덕에 반격을 당하지는 않는다. 이후 원소와 서준에 맞설만한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 연주를 차지하고 있는 여포, 정확히는 연주를 거쳐서 '''장안의 협천자'''를 시도한다.[* 여차하면 서주의 포기도 각오하고 있다. 애당초 서주는 뻗어가기는 좋지만 지키기가 어려우며 서주의 민심은 서준 쪽에 기울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머물기 힘들다.] 한중과 익주, 양주까지 세력을 얻고 조조와 손을 잡아 서준에게 대항한다. 조조와 서준의 싸움에 어부지리를 얻으려 하기 위해 상황을 보다가 서준이 군을 비우자 영천으로 진격하여 남양, 완, 양양 등을 차례로 빼앗는다.[* 사실 이는 서준군의 계책이었다. 험한 지형에 의지하여 버티면 유비를 토벌하는게 만만치 않을 것이기에 적당히 땅을 주고 유인하여 섬멸할 계획이었던 것. 때문에 양양까지 나아갔음에도 유비군은 서준군의 청야 전술로 빈 성만 얻어내고 있었다.] 강릉까지 마저 공격하지만 육손의 계책에 당해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여 벗어난다. 주유와 전예의 구원을 받지만 장비가 죽자 이성을 잃는다.[* 이때부터 전예, 주유, 방덕 등 주변인들의 말을 듣지를 않는다. 무시하는 것을 넘어 윽박지르거나 여차하면 칼을 뽑아 협박하는 등 강압적으로 나온다.] 퇴각해야 되는 상황임에도 감정에 못 이겨 전투를 벌이나 우익이 무너져 퇴각. 주유에게 맥성을 맡기고 도망친다.[* 지원도, 양식도 없기에 버티다가 안 되면 그냥 항복하라 말한다.] 결말에선 서준에게 패하고 자신이 폐위시켰던 헌제와 같이 유폐당하는 신세가 된다. 여담이지만 작중에서 유비는 인의군자나 중국식 영웅[* 스스로의 용맹과 재략이 두드러지기보다는 덕이 높아 인걸들이 따르며, 그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도록 이끌어주는 인물.]보다는 능력은 있지만 음흉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나온다.[* 대표적으로 서주를 얻을 때 사실상 무력으로 빼앗아간 일이나 대놓고 주유나 휘하 군사들을 희생양으로 쓰는 등 ] 세력면에서는 주인공 이상으로 수혜를 받았지만 인성이나 능력면에서는 너프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휘하 인재들의 낮은 활용도로 서준군의 2인자였던 주유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고, 스스로에게서 실패를 찾는 대신 전예나 방덕 등 자신을 받쳐주지 못하는 인물들 탓으로 돌리며 전예를 벽지로 보내거나 장소를 다독이지 못해 후방을 염려하는 등 한계를 보였다. 또한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데 내정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전쟁과 세력 확장에 목메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항상 어부지리나 날먹을 노리며 눈에 보이는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하다. * 관우 유비의 의형제. 낙양에 주둔하며 관중의 치안을 지켰으나 서서와 위연이 군을 몰고 전예와 유비가 이끄는 본군의 보급로를 위협하자 영천에 주둔하며 후방을 지켰다. 그러나 정작 서서와 위연은 시간끌기로 일관했고, 그 사이 강릉에서 벌어진 일전에서 장비가 죽고 유비가 패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최대한 빨리 서서와 위연을 패퇴시키고 유비를 도우려 가려 했으나 역시 싸워주지 않는 탓에 땅을 내주고 물러나야 했다. * 장비 유비의 의형제. 유비를 도망치게 하고 본인은 군을 수습하다가 진도에게 살해당한다. 시체는 제갈량의 계책으로 시간을 끄는 용도로 쓰이고 유비에게 돌아온다. * '''[[진궁]]''' 장막, 여포와 손잡고[* 연의의 내용으로 진궁이 여포를 섬겼다는 이미지가 퍼졌지만, 사실 진궁에게 여포는 장막이 죽고 난 후 오갈 곳이 사라진 상황에 어떻게든 세력을 다잡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선택지다. 정사에서는 실제론 조조에게 반란하는 시점에서 주군 겸 윗사람으로 여긴 건 장막이며, 장막이 죽은 후에도 여포를 암살하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예주-연주에서 조조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연주를 거의 장악할 듯 했으나, 조조의 반격과 기근 등으로 점차 전세가 장기화된다. 한편 여포 특유의 의심병과 배신 기질 탓에 점차 셋의 사이는 악화된다. 여포는 서준이 지원한 군량을 혼자만 독점하다가 되레 조조의 역습에 대부분을 강탈당하는 수치를 당했고, 기존에 장막과 진궁의 군량미 부탁을 거부한 사실은 잊고, 둘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을 품는다. 이에 진궁은 더는 여포와 같이 일을 할 수 없다 여겨 서준과 손을 잡으려다가 먼저 눈치챈 여포에게 공격받아 장막과 일족들이 참살당하고 만다. 본인의 목숨만 건져서 서준에게 달려가서는 본인의 실수는 쏙 빼놓고 여포의 배신 사실만 일러바치고는 원술에게 원군을 구한다는 핑계로 수춘까지 도망친다. 이후 서량의 사도구들과 유표, 원술 등을 움직여 서준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만들지만 실패한다. 원술이 서준과 손을 잡은 이후로 다시 어디론가 떠났다고 한다. 얼마 안 있어 유비의 책사로 등장한다. 서준을 죽이겠다고 이를 갈면서 손책과 유비에게 계책을 올리는 등 조조 뒤를 이은 서준의 난적으로 떠올랐는데, 이는 자기 가족을 죽인 여포의 의동생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여포와 몇 번이나 싸웠고, 우세할 때마다 사정이 생겨 살렸긴 하지만 죽이고 싶단 고민만 수십번은 한 서준 입장에선 환장할 오해다 * 장소 * 전예 유비군의 상장. 원 역사의 명성답게 여러군벌이 난립하던 서량을 통제해 유비군의 성장에 일조한 유능한 인물. 장비와 관우에 비견되는 유비군의 기대주. 관우, 장비를 제외하면 유비와 가장 가까운 측근이다. 형주 공격의 선봉장으로 출격해 육손을 완성으로 밀어부치나 육손이 교묘하게 패주한 척 하면서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을 알고도 무르지 못하는 상황에 고민한다.[* 유비의 진군 의지가 워낙 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 남양 앞에서 발이 멈추자 장비의 가세로 점령에 성공하나 강릉에서 결국 크게 패퇴하고, 이를 예감하고도 멈추지 못함을 한탄한다. 장비의 복수전에서 버티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유비의 신뢰를 잃는다. * 황권 유비군의 장수. 남양 점령으로 기세가 오른 유비의 출격안을 정면에서 반대했으나 이미 답정너 상황이라 어쩌지 못했다. 유비의 명으로 군량을 보급을 맡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